엄마와 아이가 빛나는 나날

“몬테소리 교육을 했더니이상하기도 합니다.

순식간에 엄마와 아이가빛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라고 말할 수 있는 일이그리 쉽게 일어날 리 없습니다.

➀ 혼란과 초조함이 쌓여 가는 날들이 지나고

➁ 몬테소리 교육을 만나도 해소되지 않는 고민들로 괴로워하며

➂ 자기 나름의 연구, 끈질긴 노력과 실천을 거쳐야 가까스로

➃ 엄마와 아이의 얼굴에 빛이 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➀ 혼란과 초조함이 쌓여 가는 날들

1.혼란과 초조함이 쌓여가는 날들

이 이야기의 필자는 첫째 아이를 출산한 당시의 일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아이를 둘러싼 환경에 전혀 무관심했던 저는 아이를 가지고 나서야 ‘내가 과연 엄마의 역할을 해낼 수 있을까’ 하고 불안하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루 24시간을 자유롭게 연구에 몰두하던 학생 기분에서 벗어나지 못했던 엄마, 대학원 졸업 후 2년 동안 밤낮을 바꿔 가며 텔레비전의 프로그램 제작에 매달려온 엄마, 자신의 생활 리듬도 엉망이었던 엄마, 그것이 제 모습이었습니다. 사실 제 자신의 인간다운 생활리듬을 되찾는 것도 힘든 일이었습니다.
(중략)
큰아이와 단둘이 지내던 날들을 되돌아보면 저는 마치 독재자처럼 제 사정에 따라 제 마음대로 해 버렸던 것 같습니다. ‘식사 전에 목욕시켜 버리자’라고 생각 하는가 하면 ‘오늘은 일찌감치 먹여버리자’라는 등.
(중략)
아이가 태어난 무렵부터 ‘하루의 생활 리듬을 정리하고 아이와 함께 여러 가지 것들을 경험해야지’ 하고 이상만 높았지, 실제로는 나 혼자서 하고 싶은 일이 훨씬 많았습니다. 둘째 아이가 생기고 나서도 아이들의 움직임을 뒤에서 그냥 쫓아가는 식의 날들이 계속되었습니다.

2. 몬테소리 교육을 만나도 해소되지 않는 고민

아이들을 몬테소리 ‘어린이집’에 보냈지만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줄지 않았습니다.

‘내가 지금 아이라면 꼭 여기에 다니고 싶다’라는 생각을 하며 겨우 1시간 남짓 어린이집을 견학하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큰아이가 진지하게 작업에 임하는 모습을 보며, 우리 집에서는 전혀 상상도 못할 조용하고 차분한 공간을 보며 ‘내가 지금까지 고민한 문제의 해답이 몬테소리 교육에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하여 아이들을 몬테소리 어린이집에 입학시키고 나서부터 저 역시 몬테소리 교육을 조금씩 알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몬테소리 교육에 대한 표면적인 지식은 얻었지만 여전히 이상과 현실의 차이는 줄어들지 않았습니다. 너무 조급하게 해답을 구하려고 이것저것에 손을 내민 탓인지 오히려 생활은 더욱더 바빠지기만 했습니다. 큰아이가 유치반, 작은 아이가 유아반을 지났을 무렵 어린이집 생활과 가정생활은 완전히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중략)
장난감을 놓아둘 장소를 따로 정해야 하는지, 만약 그렇다면 어떻게 놓을지, 놓아둘 장소가 애들 눈에는 어떻게 비칠지, 장난감을 꺼내고 넣는 방법은 따로 있는지 등은 전혀 생각도 못 했습니다. 결국 돼지 목의 진주였습니다. 제한된 생활공간 안에서 장난감은 당연히 어지러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결국 저는 정리해야 할 것을 상자 속에 뒤범벅이 되도록 숨겨 놓았던 것입니다.

3. 자기 나름의 고민과 견실한 실천

마침 아이가 다니는 ‘M어린이집” 에서 필요 없게 된 널찍한 교구 정리장을 얻어 장난감 정리하는 방법을 연구하기로 했습니다. 정리장에 작고 예쁜 나무와 집어 가기 쉽게 색연필도 색깔별로 가지런히 잘 진열해 놓았습니다. 스티커도 꺼내어 사용하기 쉽게 파일 같은 곳에 따로 정리해 두는 등 ‘어린이집’ 의 환경을 떠올리면서 진열해 보았습니다.

‘어린이집에서처럼 집에서도 작업할 수 있도록’ 집안 환경을 꾸몄습니다. 아이가 불편한 듯 보이면 새로운 방법을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기본적인 자리는 바꾸지 않으면서 끊임없이 더 나은 방법을 궁리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도 아이의 생활 리듬을 고려하여 자주 걷게 하거나 기본적인 생활에 아이의 참여를 높일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생활 시간도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4. 엄마와 아이가 빛나는 나날

그 후 온라인 강의로 몬테소리 교육을 제대로 배우며 어린이를 키우려면 어른 스스로 적극적으로 알려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부터 엄마와 아이에게서 변화가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몬테소리 교육의 ‘제시(해 보인다)’ 방법이야말로 어린이와 함께 생활하는 어머니에게 필요한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온라인 강의를 다 듣고 난 무렵 제 자신에게 일어난 가장 큰 변화는 아이에게 일 돕기를 지시하는 방법이었습니다. 사실 지금까지 아이에게 일을 도와 달라고 할 때는 윽박지르거나 강요하는 방식을 따랐지만 몬테소리 교육을 접하고부터는 알기 쉽게, 명확하게, 적절한 시기를 살펴‘부탁한다’는 식으로 방식을 바꾸었습니다. 그랬더니 정말로 아이는 저를 잘 도와주었습니다.

어떤 일을 시키더라도 조심스럽게, 마음을 가라앉히고, 집중하게 “해 보겠니?” 하고 말했습니다. 아이가 잘 이해하지 못하는 난감한 상황에서는 잔소리를 하지 않고(이것이 저로서는 제일 힘들었습니다.) 천천히 하는 방법을 해 보였습니다. 물건을 놓아두는 곳도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쉽게 넣었다 꺼낼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분명히 정해두었습니다.

또한 하루 일과 (해야 할 일의 차례)를 확실히 정해서 지키도록 노력했습니다.

아이는 일어나 밥을 먹고 옷을 갈아입고 이를 닦고 “다녀오겠습니다.”라며 집을 나섭니다. 집에 돌아오면 “다녀왔습니다.”라고 한 후 양치질을 하고 손을 씻고 간식을 먹고는 밖에 나가 놉니다. 5시에 집에 들어와서 집안일을 거들고(첫째 아이는 숙제를 합니다.)

저녁을 먹고 목욕을 하고 옷을 갈아입고 이를 닦습니다. 그리고 그림책 한 권을 읽고 하루 중 제일 기뻤던 일과 슬펐던 일을 이야기하고 “안녕히 주무세요.” 말하고는 잠자리에 듭니다. 무리하게 강요하거나 누구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하게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욕심 내지 않고, 할 수 있는 데까지 한다는 사고방식을 가진 후부터 아이들도 저도 편해졌습니다.

아이에게 이상(理想)을 내걸지 않고 ‘언젠가는 아이 스스로 할 수 있게 해 주세요!’라는 소원을 간직한 채 아이를 잘 지켜보았습니다. 아침 시간이나 비 오는 오후 같은 때도 아이 스스로 자신의 일을 할 수 있도록 준비해 주었더니 스티커 붙이기, 문자나 숫자 작업 등에 집중하면서 자신을 스스로 발전시켜 나갑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저와 아이들 사이에 있었던 의견 충돌도 사라졌습니다.

“너 혼자 못하잖아.”라고 말리는 부모와 “해 보고 싶다.” 고 주장하는 아이 사이의 대립은 서로를 짜증 나게 했었습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의 간격을 줄일 수 있도록 환경을 마련해 주고 천천히 손을 움직여 동작을 아이에게 확실히 제시하여 하는 방법을 알려 주자 아이의 하루하루는 확실히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중략)

예를 들면 어제 딸아이가 아침부터 “엄마, 오늘 간식은 크레이프로 해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럼 저녁은 뭐가 좋니?”라고 물었더니 “오늘은 제가 쇠고기 감자탕을 만들래요.”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저는 간식용 크레이프 재료와 쇠고기 감자탕 재료를 생각하여 장을 봐 놨습니다. 그러고는 부엌을 정리해 두고 “슬슬 간식을 만들자.” 고 하였습니다. 아이는 어떤 순서로 재료를 섞는가 요리 설명서를 보면서 스스로 생각합니다. 아이의 손이 갈 곳에 놓아둔 그릇이나 거품기 따위는 자기가 찾아냅니다.

쇠고기 감자탕을 하려면 먼저 감자 껍질을 벗기고 먹기 좋은 크기로 썹니다. 감자의 적당한 크기를 가르쳐 주고, 어떻게 썰 것인가를 알려 주면 나머지는 아이 혼자 합니다. 당근과 고기도 썰고, 냄비와 볶음 주걱을 준비하고 발판에 올라서서 불을 켜고 볶기 시작합니다. 준비해 둔 멸치 국물 조미료를 넣고 아이는 자기 스스로 음식을 만들었다는 커다란 만족감을 느낍니다.

어린이들이 식사 준비를 하는 이유는 스스로 만들고 싶어서, 만들기 쉬워서, 즐거워서, 좋아해 주어서, 칭찬받아 기뻐서입니다. 이렇듯 환경의 조성과 제시가 어린이의 독립을 촉진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 아이들은 식탁을 차릴 때 각자의 역할을 분담하여 즐겁게 자신의 몫을 해내고 있습니다. 요즈음은 정말로 즐겁게 자신들의 역할을 해내고 있습니다. 억지로 시켰던 예전과는 달리 강제로 시키지 않았던 것이 그 비결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아이를 키우는 데는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섣불리 말할 수 없습니다. 다만 어린이의 현실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안목, 그리고 그들을 진정으로 도울 수 있는 손길과 환경이 있으면 됩니다.

몬테소리가 발견한 어린이는 환경에 의해 독립해 가는 어린이입니다. 몬테소리가 이것을 발견한 지 100년이 흐른 지금, 그녀와 마찬가지로 저도 제 눈앞에서 어린이가 변화하는 것을 보니 정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가정교육의 위기’ 가 지적되고 그것을 극복할 필요성이 강조되는 오늘날, 위에 소개한 경험담은 진실로 귀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합니다.

어머니들은 사회에서 일하면서 점점 더 바빠지고 있습니다. 육아 관련 정보는 넘쳐나지만 아이를 어떻게 키워야 좋을지 모르겠다는 당혹감은 좀처럼 줄어들지 않고 있습니다. 저 역시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몬테소리 교육을 만나면서부터 어른과 아이 모두가 즐겁고 풍요로운 나날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이것이야말로 ‘엄마와 아이를 빛나게 하는 몬테소리의 메세지’ 의 증거가 아닐까요.

 

※ 사가라 아츠코 [엄마와 아이를 빛나게 하는 몬테소리의 메세지] 참조

기사 공유하기

댓글